삼일째까지는 그간 못봤던 친구들 얼굴도 보고 모자랐던 잠도 보충하며 시간을 흘렸다.
그렇게 삼일을 소비한 다음에야 어딘가 슬슬 떠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그저 숙소 하나만 믿고 떠난 속초 여행.
짧은 이틀간의 여행은 떠났을 때보다 더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1. 출발, 그리고 동명항
출발하는 날도 나는 늦잠을 잤다. 느긋하게 가서 사진이나 찍으며 바람쐬고 바다나 보자는 루즈한 마음이었기에 출발또한 그리 서두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여행을 위한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충 출퇴근용 가방에 있던 것을 그대로 챙겨들고, 전에 두물머리에 다녀왔다가 쳐박혀 있는 카메라 가방을 그냥 그대로 다시 집어들었다.
충전이 되어 있지 않은 카메라와 휴대폰 덕택에 다시 한시간을 소비한 다음에야 겨우 12시가 넘어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속초에 도착하니 벌써 4시가 넘은 시각.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냉큼 짐을 푼 다음 바로 카메라를 메고 숙소 건너편인 동명항으로 향했다.

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바닷바람과 항구만이 가지는 비릿한 냄새가 비로소 내가 여행을 떠났음을 상기시켜 준다.
시외버스 터미널의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가지고 재빨리 코스를 체크했다. 동명항을 중심으로 위쪽으로 약 1km정도에 일출을 볼 수 있는 영금정이 있고, 그 바로 위쪽에 등대 해수욕장과 등대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속초 해수욕장과 속초시청을 따라 내려가면 중앙시장과도 바로 닿아있고, 관광명소인지 "갯배"라고 적힌 곳도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나는 밤 9시 넘어까지 무작정 걷게 된다. 평소에 그리고 걷기가 싫어 자전거며, 스쿠터에 의존하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카메라 들쳐메고 무작정 걷게 만드는 무언가가 속초에는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는 여객선 터미널과 해양경찰청, 그리고 해양세관이 나란히 붙어 있다. 해양경찰청의 위용도 대단했지만 작은 파출소정도로 보이는 해양경찰 초소도 있었다. 나란히 늘어서 있는 세 대의 자전거가 정겹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문득, 불쑥 들어가 길이라도 물어볼까 하다가 지도로 이미 다 파악해 버린 탓에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번 들어가서 해양경찰의 안내를 받아보는 것도 한번 해 봄직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2. 꼭 추천하고픈 영금정

지도만 보고 무작정 걸어 올라간 영금정. 속초에서는 해맞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이곳 영금정과 조금 더 걸어올라가면 있는 등대전망대, 그리고 속초해수욕장 아래쪽에 있는 속초 해맞이 공원이다.
저녁시간이라 아침 해맞이를 다시 기약하며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영금정에서 바라본 저녁놀이 지는 동명항은 또 색다른 느낌이다. 꼭 서해가 아니더라도 석양은 어디서나 붉게 타오른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때마침 구름도 어울려 해를 같이 넘기고 있었다.

영금정 입구에서 우측 계단으로 올라가면 영금정 맨 윗부분으로 올라갈 수 있고, 좌측의 낮은 계단쪽에는 저렇게 짧지만 조명이 아름다운 다리와 함께 바다를 직접 내려다 볼 수 있는 작은 정자가 하나 더 마련되어 있었다. 작은 도시지만 (걸어서 한바퀴 다 돌아도 2~3일이면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하나하나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다.
특히 저쪽 정자와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파도는 진짜 바다라는 실감마저 전해준다.
3. 밤의 속초

밤이 늦었으니 다시 숙소로... 오다가 아래쪽으로 좀 더 내려가볼까 하며 다시 거쳐간 동명항. 점포들은 이미 오후 5시부터 문을 닫기 시작해서 어둠이 내리자 적막하기만 했다. 어디서 회를 사야하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져버렸다.

주인잃은 자전거도 가로등 밑에서 안쓰럽기만 했다. 이 항구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저녁에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알렉스도 그랬지만 속초는 참으로 "Calm"이란다.
항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시내로 빠져나왔다. 첫날인데 너무 많이 걸어다닌게 아닌가 싶은 정도로 무리를 한 것 같은 기분에 무려 9천원이나 하는 물회냉명을 저녁으로 섭취하고 또 다른 야경을 찾아나섰다.

속초 중앙시장 부근에 있는 아마도 차이나타운 같은 곳일 거라고 예상되는 지역이다. 골목 하나를 다 루미나리에로 채워놨더라. 화려하고 볼거리가 있는 건 좋았는데, 바로 4차선 도로 건너편의 불꺼진 적막함에 비해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 선뜻 그 안으로 들어가고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언제나 그렇지만 내 여행은 대부분이 쓸쓸하고 의외의 것에 조금 기뻐하다가 다시 그리움을 잔뜩 안고 돌아오는 반복선상이니 저런 화려한 곳은 아예 근처조차도 가지 않게 되는 것인가 보다. 내가 조금 더 외로움에 무뎌지면 눈 딱 감고 혼자 휘적휘적 저런 곳도 돌아다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는 아직도 명동에 가보는 것조차 울렁증이 일 정도니, 한 마흔살이 될 때까지는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문제적 이질감의 루미나리에 바로 맞은편 골목. 척 봐도 오래되 보이는 식당들과 선구를 파는 가게, 그리고 불이 꺼져 있거나 아주 약한 조명이거나 한 가게들... 역시 나는 이런 쪽이 더 안정감이 든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가을동화 촬영지라는 갯배 승선장이 나온다. (미리 얘기해 두지만 갯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촬영지라는 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바다에 가면 많이 찍어오는 오징어배. 정박되어 있는 오징어배는 처음 찍는 것 같다. 오징어배는 선상에 조명등이 엄청 많이 달려있기 때문에 어디서든 구분이 쉽다.
새벽작업을 준비하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았는지 작업하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에 다시 나와볼까 고민도 했지만 출선을 찍고 해맞이를 위해 영금정까지 걸어가기엔 시간이 꽤 걸리는지라 해맞이를 택했다.

작은 항구여서인지 작은 배들이 많다. 대부분 오징어배와 낚싯배다. 낚시 무척 해보고 싶었는데 이대로의 안생겨지수라면 곧 낚시를 혼자 배워서 또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자혼자 낚시다니면 막장일꺼야 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뭐...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쁘지만도 않을 것 같아.
4. 잃어버린 회를 찾아서

아아.. 드디어 내가 미친게야... 동명항 기준으로 위로 1km를 걸어 영금정을 보고, 다시 아래로 2km이상을 걸어 갯배와 작업준비중인 배들을 좀 본 다음... 횟집을 찾아다녔는데, 의외로 횟집들이 없더라. 평일이라 그런가 싶어 지도를 다시 꺼내들고 횟집단지를 찾아봤더니... 오마이갓! 영금정 바로 옆이 동명항 회단지. 터얼썩....;;
잠시 망연자실하다가 다시 영금정으로 올라갔다. 정말 무지하게 걸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나 이렇게 회에 목숨거는 사람은 아닌데... 저녁도 물회냉면 먹었잖아.. 등등.. 별의별 잡생각을 다 하다보니 영금정에 또.다.시. 도착해 있더라.
그래서 다시 찍어본 영금정 옆에 있는 짧은 정자로 가는 다리. 조명이 너무 화려해서 다리 위에 서 있을 때는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다 벗어나서 제일 앞쪽으로 가서야 바다를 볼 수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 들으면서 밝은 불빛속을 걸어가니 검은 바다가 풀썩댄다.
자 이제 회를 먹자.
- 2회에서 계속 -







